검찰공화국이라는 유령, '제왕적 윤석열' 저지할 카드 [조성식의 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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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그 유명한 '공산당 선언'은 이렇게 시작한다. '한 유령이 유럽을 배회한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이를 빗대어 강력한 검찰주의자 윤석열 대통령이 다스릴 세상을 풍자해보자. '한 유령이 한국을 배회한다. 검찰공화국이라는 유령이.'
우려는 했지만, 심상찮다. 취임 전 대통령 집무실 이전 강행 말이다. 표적을 정하고 수십 군데 압수수색 하듯이 밀어붙이는 행태. 어디서 많이 보던 광경 아닌가? 그 거대한 조직과 직원 수천 명에게 2주 안에 방 빼라니. 국민과의 소통을 내세웠지만, 불통의 극치다. 그들도 국민이거늘. '제왕적 총장'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말 한마디로 전국 검사들을 움직이는 검찰총장과 통합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대통령은 다르다. 수사와 국정은 다르다. 피의자에게 군림하는 검사 기질로 나라를 다스리려 한다면 국가적 비극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그래서 피곤하지만 쓴 소리를 안 할 수 없다.
검찰공화국이라는 유령
윤 당선인이 내세운 사법 관련 공약의 요체는 검찰권 강화다. 검경 수사권 재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무력화, 검찰의 독자적 예산권 확보,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 등의 귀결점은 하나다. 검찰공화국 완성!
언론보도에 따르면 최근 대검찰청은 김오수 검찰총장의 동의를 거쳐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법무부에 전달했다. 김 총장은 아마도 검찰의 조직논리를 대변했을 터다. 이는 그가 윤 당선인 측으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은 것과는 별개라고 봐도 된다. 그도 검사인만큼 그것이 검찰 중립성 확보에 도움이 된다고 믿을 테니까.
이에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위해 수사지휘권이 필요하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나는 박 장관 말이 원칙적으로 옳다고 본다. 그렇다고 대검 주장을 무조건 배척하고 싶지는 않다. 비록 수사지휘권이 정권 성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 게 사실이지만,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해치는 것이라면 폐지도 고려할 만하다.
문제의 본질은 그게 아니다. 관건은 검찰권력 해체, 즉 검찰권 분산이다. 검찰개혁의 목표이자 종착점은 수사/기소 분리다. 검찰이라는 행정부 산하 기관이 가진 권한이 너무 커서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리에 맞지 않으니 그 기능을 나누자는 것이다.
관건은 검찰권력 해체
수사/기소 분리는 유럽 주요국과 미국 등 사법선진국에서는 상식이다. 그게 문제라면 수사와 기소를 경찰과 검찰이 분담하는 영미식 형사사법체계는 벌써 망가졌어야 한다. 예외적으로 검사가 직접 수사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지만, '검사의 고유 임무는 기소'라는 대명제는 흔들리지 않는다. 기소하려면 경찰 수사를 점검하고 보완해야 한다. 법률적 조언과 지도가 필요하다. 이는 직접수사 이상으로 중요한 기능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우리나라 검찰 제도는 일본과 비슷해졌다. 일본도 원칙적으로 수사는 경찰 몫이다. 다만 일부 중대범죄는 특수부 검사들이 직접 수사한다. 나도 기자로서 한창 검찰을 취재할 때는 영미식보다 일본식이 우리나라 실정에 더 맞는다고 봤다. 이른바 거악 척결과 사회정의 구현이라는 검찰의 순기능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경찰 수사역량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점도 고려 요소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왜 수사/기소 분리에 찬성하는가?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검찰은 수사기관이 아닌 권력기관이기 때문이다. 세계 어떤 나라에도 이렇게 막강한 조직과 인력을 갖춘 검찰(검사 2000여 명, 수사관 6000여 명)이 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우리처럼 검찰이 사회 모든 영역에 개입하고 정치보복 논란의 중심에 있는 나라를 알지 못한다.
40여 명의 검사장이 차관급 대접을 받고, 법무부 외청에 불과한 검찰 간부 인사가 언론의 주요 뉴스거리다. 권력기관이라는 방증이다. 청와대, 국회, 정부 기관, 재벌기업 등 우리 사회 힘깨나 쓰는 곳에는 어김없이 검사 출신이 포진해 있다. 예전에 현직 검사장은 내게 이렇게 탄식했다. "우리나라처럼 검찰 수사내용이 수시로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나라가 또 있을까? 정말 비정상적인 일이다"라고.
민주주의 원리는 권력을 나누는 것이다. 그것이 검찰개혁의 출발점이다. 과거 국민 위에 군림했던 정보기관은 과도한 권한을 점차 줄여 문재인 정부에 들어와서는 거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중앙정보부와 안전기획부의 맥을 잇는 국가정보원은 국내 정보 파트를 없앴고, 보안사령부 후신인 기무사령부는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이름을 바꾸면서 민간 사찰의 폐습에서 멀어졌다. 이제 검찰만 남았다.
경찰의 미흡한 수사력도 수사/기소 분리를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광역수사대와 과학수사대, 사이버범죄수사대 등의 활약으로 수사역량이 커진 데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비견되는 국가수사본부(국수본)도 발족했기 때문이다. 국수본은 거대한 경찰 조직에서 수사만 전담하는 독립기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검찰 수사권 박탈이라는 주장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민주당 안대로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면 기존 검찰청은 공소청으로 탈바꿈하고, 중수청(중대범죄수사청)이 따로 설립된다. 수사를 원하는 검사들은 중수청으로 옮겨가면 된다. 공수처 소속 검사들처럼 직장이 바뀔 뿐 수사 기능은 같다. 신분 논쟁은 부차적이다.
윤석열 당선인의 빈약한 논리
수사/기소 분리는 정쟁 대상이 아니다. 특정 정권에 유리하거나 불리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보 정부든 보수 정부든 똑같이 적용된다. 검찰의 우월적이고도 독점적인 지위를 보장하는 형사사법체계의 선진적 변화라고 보면 된다. 검찰이 수사와 기소를 움켜쥐어야만 효율적이라는 주장은 시대착오일뿐더러 과학적 근거도 없다.
검찰에서 수사 기능을 떼어놓으면, 수사기관은 3각 편대로 재구성된다. 일반 수사는 국수본, 중대범죄 수사는 중수청, 고위 공직자 및 판‧검사 수사는 공수처 영역이다. 검찰은 이 기관들의 수사를 점검/보완하고 기소로 견제하게 된다. 수사기관 간, 수사기관과 공소기관 간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리가 작동하는 셈이다.
그 점에서 윤 당선인이 총장직을 내던진 명분으로 삼은 중수청 결사반대는 보편적 공감을 얻기 힘들다. 검사만이 정의롭고 검찰만이 정치권력을 수사할 수 있다는 건 오만이고 독선이다. 자칫 검사의 특권을 건드리지 말라는 으름장으로 읽힐 수 있다. 우리 사회의 특별한 계층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런 시대가 아니지 않은가?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면 국민이 피해를 본다는 시각은 청와대에서 나와야만 제왕적 대통령에서 벗어나고 국민과 소통이 잘된다는 주장만큼이나 허술하다. 역시 어떠한 과학적 근거도 없다.
'공룡 경찰'에 대한 우려도 마찬가지다. 자유당 때 얘기를 언제까지 들먹일 건가? 제도적으로도 많이 개선되고 보완됐지만, 국민 의식도 성숙해졌다. 무엇보다 경찰은 검찰과 달리 문턱이 낮고 노출이 잘 돼 국민 감시가 쉬운 편이다. 게다가 영장청구권을 비롯해 보완수사/재수사 요구권, 징계 요구권 등 검찰의 견제 장치가 만만찮다.
검찰청법 8조에 따르면, 법무부 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 검찰권이 분산되면, 즉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면 굳이 장관이 총장에 대해 수사지휘권을 행사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검찰개혁 전문가인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게 의견을 구하자 "앞부분은 유지하더라도 뒷부분은 폐지해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내 생각이 딱 그렇다.
민주당의 이중적 행태
검찰개혁 논쟁이 정쟁으로 변질하고 '검찰개혁 피로감'이라는 프레임이 대중 속으로 파고든 데는 언론의 치우친 보도 탓도 있지만,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이중적 행태도 한몫했다. 검찰이 적폐 청산 수사를 벌일 때는 특수부를 역대 최대 규모로 키우고 직접 수사권을 보장했다가 정권을 겨냥한 수사를 벌이자 인사로 보복하고 뒤늦게 수사/기소 분리를 추진하는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물론 검찰 수사의 적절성 여부는 별개다.
지난해 가을 민주당 주관 검찰개혁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석했을 때 일이다. '수사/기소 분리'가 주제였다. 주제발표가 끝난 뒤 토론 시간에 한 의원이 물었다. "수사/기소 분리를 어느 시점에 하면 좋겠냐"고. 대선 전이 좋은지, 대선 후가 나은지 정략적 판단을 구하는 질문이었다. 나는 이렇게 답변했다.
"수사/기소 분리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대선 공약이다. 시민사회의 숙원이고 많은 국민이 지지한 공약이다. 국민을 위해 꼭 실현해야 할 정책이라면 내일이라도 착수하면 되지, 왜 대선 유불리를 따지느냐? 왜 정략적으로 저울질하느냐? 그건 내가 할 얘기가 아니라 의원들이 판단할 문제다. 옳은 일이라고 믿는다면 실천하면 되지 않나? 그게 책임 있는 집권여당의 자세 아닌가?"
나는 그 의원의 검찰개혁 의지와 열정을 의심하지 않는다. 검찰개혁에 대한 부담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럼에도 일부러 목소리를 높인 것은 민주당이 검찰개혁을 정략적 카드로 만지작거린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검찰개혁이 민생과 관계없다느니 권력수사 차단용이니 하는 엉터리 프레임에 갇힌 데는 민주당 지도부의 책임도 있다는 게 내 판단이다.
심지어 대선 기간에는 일종의 금기어였다. 검찰개혁 얘기를 꺼낼수록 윤석열 후보가 유리해진다는 패배주의적 논리가 당을 지배하는 듯싶었다. 그 바람에 수사/기소 분리와 관련된 두 법안, 즉 중대범죄수사청법(황운하 의원)과 공소청법(김용민 의원)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됐다.
언론중재법 개정 파동에서 드러났듯이 지지자들을 의식해 시늉만 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도 든다. 민주당은 검찰개혁이 왜 민주주의 및 민생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를 국민에게 실증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여론을 주도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면 깨끗이 포기하는 게 국민을 도와주는 길이다.
어느 정치세력이든 집권하면 검찰 칼을 활용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민주당이 대선이 끝날 때까지 검찰개혁 의제를 덮어둔 데는 그런 정략적 계산도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이제 대선에서 패한 뒤 수사/기소 분리를 외친다. 당위성을 떠나 오해받기 딱 좋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뒤늦은 감이 있지만, 형사사법체계 선진화와 사법민주화, 그리고 국민에게 도움이 된다고 확신한다면, 문 대통령 임기 끝나기 전에 실천하는 게 정도가 아닐까? 분쟁을 줄이기 위해 당선인이 원하는 수사지휘권 폐지와 동시에 추진하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우려는 했지만, 심상찮다. 취임 전 대통령 집무실 이전 강행 말이다. 표적을 정하고 수십 군데 압수수색 하듯이 밀어붙이는 행태. 어디서 많이 보던 광경 아닌가? 그 거대한 조직과 직원 수천 명에게 2주 안에 방 빼라니. 국민과의 소통을 내세웠지만, 불통의 극치다. 그들도 국민이거늘. '제왕적 총장'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말 한마디로 전국 검사들을 움직이는 검찰총장과 통합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대통령은 다르다. 수사와 국정은 다르다. 피의자에게 군림하는 검사 기질로 나라를 다스리려 한다면 국가적 비극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그래서 피곤하지만 쓴 소리를 안 할 수 없다.
검찰공화국이라는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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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 깃발. 2021.3.3 | |
ⓒ 연합뉴스 |
윤 당선인이 내세운 사법 관련 공약의 요체는 검찰권 강화다. 검경 수사권 재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무력화, 검찰의 독자적 예산권 확보,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 등의 귀결점은 하나다. 검찰공화국 완성!
다 좋다. 그것이 국민을 위한 것이라면.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다는 건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다 안다. 노무현/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을 거꾸로 되돌리려는 윤 당선인의 검찰지상주의는 국민에게 이롭지도 않거니와 시대정신에도 맞지 않는다. 심지어 검사들한테도 좋지 않은 일이다. 검찰권력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본연의 임무인 기소와 공소유지에 전념할 기회를 차단하는 거니까.
언론보도에 따르면 최근 대검찰청은 김오수 검찰총장의 동의를 거쳐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법무부에 전달했다. 김 총장은 아마도 검찰의 조직논리를 대변했을 터다. 이는 그가 윤 당선인 측으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은 것과는 별개라고 봐도 된다. 그도 검사인만큼 그것이 검찰 중립성 확보에 도움이 된다고 믿을 테니까.
이에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위해 수사지휘권이 필요하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나는 박 장관 말이 원칙적으로 옳다고 본다. 그렇다고 대검 주장을 무조건 배척하고 싶지는 않다. 비록 수사지휘권이 정권 성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 게 사실이지만,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해치는 것이라면 폐지도 고려할 만하다.
문제의 본질은 그게 아니다. 관건은 검찰권력 해체, 즉 검찰권 분산이다. 검찰개혁의 목표이자 종착점은 수사/기소 분리다. 검찰이라는 행정부 산하 기관이 가진 권한이 너무 커서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리에 맞지 않으니 그 기능을 나누자는 것이다.
관건은 검찰권력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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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 문 대통령과 참석자들은 권력기관 개혁 작업 진행 상황을 점검한 뒤, 검경수사권 조정, 국정원법 개혁, 공수처 설치에 대한 의견을 논의했다. 2019.2.15 | |
ⓒ 연합뉴스 |
수사/기소 분리는 유럽 주요국과 미국 등 사법선진국에서는 상식이다. 그게 문제라면 수사와 기소를 경찰과 검찰이 분담하는 영미식 형사사법체계는 벌써 망가졌어야 한다. 예외적으로 검사가 직접 수사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지만, '검사의 고유 임무는 기소'라는 대명제는 흔들리지 않는다. 기소하려면 경찰 수사를 점검하고 보완해야 한다. 법률적 조언과 지도가 필요하다. 이는 직접수사 이상으로 중요한 기능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우리나라 검찰 제도는 일본과 비슷해졌다. 일본도 원칙적으로 수사는 경찰 몫이다. 다만 일부 중대범죄는 특수부 검사들이 직접 수사한다. 나도 기자로서 한창 검찰을 취재할 때는 영미식보다 일본식이 우리나라 실정에 더 맞는다고 봤다. 이른바 거악 척결과 사회정의 구현이라는 검찰의 순기능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경찰 수사역량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점도 고려 요소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왜 수사/기소 분리에 찬성하는가?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검찰은 수사기관이 아닌 권력기관이기 때문이다. 세계 어떤 나라에도 이렇게 막강한 조직과 인력을 갖춘 검찰(검사 2000여 명, 수사관 6000여 명)이 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우리처럼 검찰이 사회 모든 영역에 개입하고 정치보복 논란의 중심에 있는 나라를 알지 못한다.
40여 명의 검사장이 차관급 대접을 받고, 법무부 외청에 불과한 검찰 간부 인사가 언론의 주요 뉴스거리다. 권력기관이라는 방증이다. 청와대, 국회, 정부 기관, 재벌기업 등 우리 사회 힘깨나 쓰는 곳에는 어김없이 검사 출신이 포진해 있다. 예전에 현직 검사장은 내게 이렇게 탄식했다. "우리나라처럼 검찰 수사내용이 수시로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나라가 또 있을까? 정말 비정상적인 일이다"라고.
민주주의 원리는 권력을 나누는 것이다. 그것이 검찰개혁의 출발점이다. 과거 국민 위에 군림했던 정보기관은 과도한 권한을 점차 줄여 문재인 정부에 들어와서는 거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중앙정보부와 안전기획부의 맥을 잇는 국가정보원은 국내 정보 파트를 없앴고, 보안사령부 후신인 기무사령부는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이름을 바꾸면서 민간 사찰의 폐습에서 멀어졌다. 이제 검찰만 남았다.
경찰의 미흡한 수사력도 수사/기소 분리를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광역수사대와 과학수사대, 사이버범죄수사대 등의 활약으로 수사역량이 커진 데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비견되는 국가수사본부(국수본)도 발족했기 때문이다. 국수본은 거대한 경찰 조직에서 수사만 전담하는 독립기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검찰 수사권 박탈이라는 주장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민주당 안대로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면 기존 검찰청은 공소청으로 탈바꿈하고, 중수청(중대범죄수사청)이 따로 설립된다. 수사를 원하는 검사들은 중수청으로 옮겨가면 된다. 공수처 소속 검사들처럼 직장이 바뀔 뿐 수사 기능은 같다. 신분 논쟁은 부차적이다.
윤석열 당선인의 빈약한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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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4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 인수위 임시 천막기자실(프레스 다방)을 방문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
ⓒ 국회사진취재단 |
수사/기소 분리는 정쟁 대상이 아니다. 특정 정권에 유리하거나 불리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보 정부든 보수 정부든 똑같이 적용된다. 검찰의 우월적이고도 독점적인 지위를 보장하는 형사사법체계의 선진적 변화라고 보면 된다. 검찰이 수사와 기소를 움켜쥐어야만 효율적이라는 주장은 시대착오일뿐더러 과학적 근거도 없다.
검찰에서 수사 기능을 떼어놓으면, 수사기관은 3각 편대로 재구성된다. 일반 수사는 국수본, 중대범죄 수사는 중수청, 고위 공직자 및 판‧검사 수사는 공수처 영역이다. 검찰은 이 기관들의 수사를 점검/보완하고 기소로 견제하게 된다. 수사기관 간, 수사기관과 공소기관 간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리가 작동하는 셈이다.
그 점에서 윤 당선인이 총장직을 내던진 명분으로 삼은 중수청 결사반대는 보편적 공감을 얻기 힘들다. 검사만이 정의롭고 검찰만이 정치권력을 수사할 수 있다는 건 오만이고 독선이다. 자칫 검사의 특권을 건드리지 말라는 으름장으로 읽힐 수 있다. 우리 사회의 특별한 계층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런 시대가 아니지 않은가?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면 국민이 피해를 본다는 시각은 청와대에서 나와야만 제왕적 대통령에서 벗어나고 국민과 소통이 잘된다는 주장만큼이나 허술하다. 역시 어떠한 과학적 근거도 없다.
'공룡 경찰'에 대한 우려도 마찬가지다. 자유당 때 얘기를 언제까지 들먹일 건가? 제도적으로도 많이 개선되고 보완됐지만, 국민 의식도 성숙해졌다. 무엇보다 경찰은 검찰과 달리 문턱이 낮고 노출이 잘 돼 국민 감시가 쉬운 편이다. 게다가 영장청구권을 비롯해 보완수사/재수사 요구권, 징계 요구권 등 검찰의 견제 장치가 만만찮다.
검찰청법 8조에 따르면, 법무부 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 검찰권이 분산되면, 즉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면 굳이 장관이 총장에 대해 수사지휘권을 행사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검찰개혁 전문가인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게 의견을 구하자 "앞부분은 유지하더라도 뒷부분은 폐지해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내 생각이 딱 그렇다.
민주당의 이중적 행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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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검찰개혁특위 위원장이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검찰개혁특위 3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1.1.7 | |
ⓒ 연합뉴스 |
검찰개혁 논쟁이 정쟁으로 변질하고 '검찰개혁 피로감'이라는 프레임이 대중 속으로 파고든 데는 언론의 치우친 보도 탓도 있지만,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이중적 행태도 한몫했다. 검찰이 적폐 청산 수사를 벌일 때는 특수부를 역대 최대 규모로 키우고 직접 수사권을 보장했다가 정권을 겨냥한 수사를 벌이자 인사로 보복하고 뒤늦게 수사/기소 분리를 추진하는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물론 검찰 수사의 적절성 여부는 별개다.
지난해 가을 민주당 주관 검찰개혁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석했을 때 일이다. '수사/기소 분리'가 주제였다. 주제발표가 끝난 뒤 토론 시간에 한 의원이 물었다. "수사/기소 분리를 어느 시점에 하면 좋겠냐"고. 대선 전이 좋은지, 대선 후가 나은지 정략적 판단을 구하는 질문이었다. 나는 이렇게 답변했다.
"수사/기소 분리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대선 공약이다. 시민사회의 숙원이고 많은 국민이 지지한 공약이다. 국민을 위해 꼭 실현해야 할 정책이라면 내일이라도 착수하면 되지, 왜 대선 유불리를 따지느냐? 왜 정략적으로 저울질하느냐? 그건 내가 할 얘기가 아니라 의원들이 판단할 문제다. 옳은 일이라고 믿는다면 실천하면 되지 않나? 그게 책임 있는 집권여당의 자세 아닌가?"
나는 그 의원의 검찰개혁 의지와 열정을 의심하지 않는다. 검찰개혁에 대한 부담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럼에도 일부러 목소리를 높인 것은 민주당이 검찰개혁을 정략적 카드로 만지작거린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검찰개혁이 민생과 관계없다느니 권력수사 차단용이니 하는 엉터리 프레임에 갇힌 데는 민주당 지도부의 책임도 있다는 게 내 판단이다.
심지어 대선 기간에는 일종의 금기어였다. 검찰개혁 얘기를 꺼낼수록 윤석열 후보가 유리해진다는 패배주의적 논리가 당을 지배하는 듯싶었다. 그 바람에 수사/기소 분리와 관련된 두 법안, 즉 중대범죄수사청법(황운하 의원)과 공소청법(김용민 의원)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됐다.
언론중재법 개정 파동에서 드러났듯이 지지자들을 의식해 시늉만 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도 든다. 민주당은 검찰개혁이 왜 민주주의 및 민생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를 국민에게 실증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여론을 주도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면 깨끗이 포기하는 게 국민을 도와주는 길이다.
어느 정치세력이든 집권하면 검찰 칼을 활용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민주당이 대선이 끝날 때까지 검찰개혁 의제를 덮어둔 데는 그런 정략적 계산도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이제 대선에서 패한 뒤 수사/기소 분리를 외친다. 당위성을 떠나 오해받기 딱 좋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뒤늦은 감이 있지만, 형사사법체계 선진화와 사법민주화, 그리고 국민에게 도움이 된다고 확신한다면, 문 대통령 임기 끝나기 전에 실천하는 게 정도가 아닐까? 분쟁을 줄이기 위해 당선인이 원하는 수사지휘권 폐지와 동시에 추진하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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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앤머니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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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게 그럴싸해보이는 이야기야... 검찰공화국... 검찰총장 임기 2년이고, 법무부장관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역대21명의 검찰총장중 고작 2년임기를 채운 사람은 8명이야... 인사권이 법무부장관에게 있는데 무슨 검찰공화국이냐??? 21명중 13명이 임기마치지도 못하고 쫓겨나는데...ㅎㅎㅎ
왜 검찰을 까겠어??? 검찰도 못건드리는 부패권력이 되고 싶은거지... 그게 정답이야... 속지마~
검찰은 행정부의 검이야... 입법, 사법부를 견제하는...
왜 검찰을 까겠어??? 검찰도 못건드리는 부패권력이 되고 싶은거지... 그게 정답이야... 속지마~
검찰은 행정부의 검이야... 입법, 사법부를 견제하는...